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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 불리는 네델란드의 인상파 화가. 불꽃같은 정열과 격렬한 필치로 눈부신 색체를 표현했으며,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853년 3월 30일 네델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엄격한 칼뱅파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7세에서 23세까지는 미술품 상점의 점원으로 일했고, 25세에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공부를 했지만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실패한 후 화가의 길을 걷는다. 31세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 37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모두 879점 남겼다.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늘 고독했던 고흐는 그의 후원자이며 동반자였던 네살터울의 동생 테오와 20세 부터 숨을 거두기까지 668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아릉의 포럼 광자에 있는밤의 카페 테라스 1888.9

 

이달의 나이스솔루션 독서토론단이 찾은 책은 '반고흐, 영혼의 편지'다.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별헤는 밤으로 유명한 반고흐가 그의 남동생과 주고 받은 편지를 관련 미술 작품과 함께 수록하였다. 책의 첫장부터 마지막까지 눈을 호강할 수 있는 책으로 고흐의 그림을 원없이 볼 수 있었던 한달이었다.

 편지구분

기간 

주요사건 

화가 입문 이전부터 보리나주까지

1872.8~1881.4(19~28세) 

▶구필화랑(런던지점, 파리본점) 사원 재직, 성서탐독과 화상 혐오로 23세 직장해고

24세 암스테르담에서 신학, 1년 뒤 중단하고 25세 보리나주(벨기에)에서 원칙주의적 탄광 전도

28세 전업화가 결심하고 그림 시작

에덴에서

1881.4~1881.12 

본가에서 모델 데생, 케이에게 구혼 거절

가족 친지와 갈등, 수채화와 유화를 배우기 위해 안톤 모베가 있는 헤이그 행

성탄절 예배참석 거부로 부자지간 절교 

헤이그에서 

1881.12~1883.9(28~30세)

모베와 테르스테이흐(구필화랑 지점장) 도움

밀레의 전기 읽고 깊은 감동

시엔과의 동거로 가족 및 지인들과 절교

드렌테, 누애넨에서

1883.9~1885.11(30~32세) 

생활고로 시엔과 결별 후 드렌테 행

드렌테 3개월, 생활고로 본가인 누에넨 행

10살 연상의 마르고트에게 구혼 거절

1885.3 부친 사망으로 큰 슬픔 

앤트워프, 파리에서

1885.11~1888.2(32~35세) 

엔트워프 3개월, 신경과민 증세로 파리 행

파리의 탕기영감 물감 상회에서 인상파 화가들과 친분 쌓고, 전시회 참여

파리에 염증 느끼고 남프랑스 아를 행 

아를에서

1888.2~1889.5(35~36세)

 파리 앵데팡당 살롱전에 작품 전시

노란 집 화가공동체 꿈꾸며 고갱과 공동생활

12/23 고갱과 불화로 귀 자르고 결별

환각증상에 대한 주민 신고로 강제 입원

생레미에서

1889.5~1890.5(36~37세) 

생폴 드 무솔 요양원 입원, 그림 치료

부뤼셀의 20인 전에 유화 전시, 호의적 특집 기사, 유일한 유화 판매

퇴원하여 테오의 파리집에 잠시 머뭄 

오베즈쉬르

우아즈에서

1890.5.21~7.29 

라부의 여인숙에 거하며 닥터 가세의 치료

1890년 7월 27일 스스로 가슴에 총탄 격발

 

책장을 덮으면서 내 인생에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등극한 고흐. 음미하고 싶은 그 동안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내게 좀더 그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짧은 생애동안 팔리는 그림보다는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다 간 고흐. 동생의 원조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는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며 31세 때 본격 그리기 시작해 37세 삶을 마감할 때 까지 평생 897점의 기적같은 그림을 그려낸다. 지금부터 열정과 광기란 단어로 표현되는 그의 작품과 삶으로 들어가 보겠다. 고흐에 대해서는 안좋은 선입견이 가득찬 상태에서 책을 열었다. 동생에게 평생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그의 모습은 챕터1을 읽으면서 더 안좋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갖고 그가 지향하는 그림을 고집스럽게 그리는 그의 모습은 짧은 생애였지만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를에 있는 고흐의 침실 1888.10

가난했던 고흐의 머릿속에는 몇가지가 있다.
남보다 늦게 독학으로 전업 화가가 됐다는데서 오는 압박감, 동생 테오의 후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기에 반드시 그에게 빚을 갚고 싶다는 심적 부담감, 상류층에서 좋아할 만한 주제를 그리는게 아니라 노동하는 민중을 그리는게 더 가치있다는 판단 그리고 세상이 언젠가는 자신의 그림을 알아줄 거라는 강한 믿음이 그것이다.

그림마다 담고 있는 의미와 설명을 동생에게 편지로 전달하며 본인의 필모그라피 897편을 채운 고흐.  처음 작품이 팔리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게 되지만 그 마저도 부담스러웠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삶을 선택한다. 고흐의 전기를 읽어본적이 없어 책만으로 판단한다면 죽기 진전 테오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알지 못하나 부치지 못한 편지와 마지막 편지를 보면서 자신의 정신적 버팀목인 테오에게 짊이 되는 자신이 무엇보다 싫었고 보답의 길로 죽은 화가의 작품과 산 사람의 작품의 차이를 언급하며, 결과론적 얘기지만 테오를 위한 자살을 예고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테오가 6개월 후 죽은 것도 무관하지 않은 아닐까?(물론 이 부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으로 사실과는 다를 수 있다.)

인생 말기의 극단적 선택 때문에을 한 그의 모습은 책에서는 볼 수가 없다. 그림에 대해서는 정말 열정적이며, 너무도 진지하게 열심이었던 그.
너무 젊은 나이에 죽었고 죽은 뒤에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 현실이 슬프면서 지금의 명성을 그도 과연 알까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덮은 지금에 있어 나에게 고흐는 가장 아름답게 그림으로 살아 있고 끝까지 신념을 잃지 않고 끝없이 붓을 다시 드는 꿈을 쫒는 누구보다 용기있는 예술가다.

꽃병에 꽂힌 12송이 해바라기 1888.8

고흐의 그림은 스승 모베와 밀레의 영향을 받은 사실 주의 풍의 그림을 그렸던 고흐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인상파 화풍과 색채의 화려함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점을 꼽자면 파리시절 부터 인 것으로 보인다. 그 시절부터의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왜 그가 태양의 화가 이고 영혼의 화가인지가 그림에 그대로 나타난다. 몽환적인 하늘과 원색적인 색감, 현란한 붓터치... 책을 보면서, 책장을 덮은 후에도 그 여운이 머리에서, 심장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오늘의 그룹토론

늘그렇듯 높은 소리님의 리드로 진행되었는데 이책에서의 핵심키워드와 영혼의 화가 고흐에게서 나는 무엇을 배우는가? 두가지이다. 독서토론단 16명(4명은 출장이나 업무로 빠졌음)은 4조로 나눠 자신에게 있어 고흐를 정의하고 고흐의 생애에서 내가 배울점을 그룹 토의했다.

핵심 키워드는 모두 하나로 모아져서 열정과 광기, 열정과 똘기, 한 방향으로 직진으로가 나와 맥락은 같게 나왔다.

고흐에 대해서 배울점은 4조 4색으로 다양하게 나왔다. 여기에서는  그것이 때로는 키워드와 통할 수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엉뚱한 방향에서 나만의 배울점으로 남게 될 것이니 그것의 답을 구하기 보다는 모두 함께 마음으로 참여해 보기 바란다.

한낮의 태양은 점점 더 뜨거워져가는데, 고흐의 그림으로 인한 두근 거림은 나이스 독서토론단의 마음 속에서 쉽게 가라 앉지를 않는다. 고흐 앓이가 꽤 오래 갈 것 같다.


<CADCAM전문가 그룹 나이스솔루션 02-2027-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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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N-CASS솔루션

Date20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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